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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번아웃의 끝에서 마주한 서늘한 질문, 영화 [어쩔 수가 없다] (이병헌, 손예진, 박찬욱, 구조조정)

by yeonlog1 2026. 3. 12.

사진출처 : 네이버 영화 [어쩔 수가 없다] 포스터

 

저도 처음 이 영화 시놉시스를 접했을 때, 솔직히 좀 불편했습니다. 25년 성실히 일한 평범한 가장이 갑작스러운 해고 통보를 받고, 재취업을 위해 경쟁자들을 '제거'하기 시작한다니요.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 수가 없다]는 이병헌과 손예진 주연으로 2025년 개봉을 앞두고 있는 작품입니다. 하지만 제가 커리어 전환기에 느꼈던 그 서늘한 불안감을 떠올리니, 이 영화가 단순한 스릴러가 아니라는 걸 직감했습니다. 과연 우리는 벼랑 끝에서 어디까지 선을 지킬 수 있을까요?

 

사진출처 : 네이버 영화 [어쩔 수가 없다] 스틸컷

평범한 관리자에서 광기의 가장으로, 이만수의 추락

이만수라는 인물은 우리 주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중년 남성입니다. 제지 회사에서 25년간 성실히 근무하며 관리직까지 올랐죠. 여기서 '관리직'이란 실무와 경영 사이의 중간 관리자를 의미하는데, 한국 기업 문화에서는 대체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위치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작스러운 구조조정으로 해고 통보를 받습니다.

제가 직접 겪었던 커리어 전환기가 떠올랐습니다. 당시 저는 "내가 쌓아온 시간이 과연 안전한 울타리가 되어줄까?"라는 질문에 시달렸거든요. 만수의 상황은 훨씬 극단적이지만, 그가 느꼈을 배신감과 공포는 충분히 공감됩니다. 성실함만으로는 보장받지 못하는 현대 직업 세계의 불안정성이 이 캐릭터의 출발점입니다.

이병헌이 연기하는 만수는 재취업을 위해 백방으로 뛰지만 포화 상태인 구직 시장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십니다(출처: 영화진흥위원회). 그리고 점점 극단적인 결론에 도달하죠. 자신보다 뛰어난 스펙을 가진 경쟁자들을 제거해야만 재취업에 성공할 수 있다는 논리로요. 가족을 지키겠다는 명분 아래 시작된 이 광기 어린 여정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요?

손예진이 연기하는 미리, 변해가는 남편 앞에서

만수의 아내 미리는 남편의 실직 이후 가계를 책임지며 헌신합니다. 손예진이 연기하는 이 캐릭터는 단순히 희생하는 아내로만 그려지지 않습니다. 그녀는 점점 변해가는 남편의 모습 속에서 혼란과 공포를 느끼는 입체적인 인물이죠.

제 주변에도 비슷한 상황을 겪은 부부가 있었습니다. 남편이 실직 후 점점 예민해지고 이상한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는데, 아내는 그걸 단순히 스트레스로만 생각했다고 하더군요. 미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는 남편의 변화를 이해하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가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고 있다는 걸 감지합니다.

이 영화에서 미리의 역할은 관객과 만수 사이의 도덕적 거리를 측정하는 잣대 같습니다. 우리가 만수의 논리에 공감하다가도, 미리의 눈빛을 보면 다시 현실로 돌아오게 되죠. 손예진의 섬세한 연기가 기대되는 부분입니다.

 

사진출처 : 네이버 영화 [어쩔 수가 없다] 스틸컷

박찬욱 감독의 미장센과 블랙 코미디

박찬욱 감독 하면 떠오르는 건 독특한 미장센과 블랙 코미디입니다. 여기서 '미장센(Mise-en-scène)'이란 영화 화면 안의 모든 시각적 요소를 배치하고 구성하는 기법을 뜻합니다. 쉽게 말해 감독이 카메라 앞에 무엇을 어떻게 보여줄지 결정하는 모든 과정이죠.

<올드보이>부터 <아가씨>까지, 박찬욱 감독은 잔인한 폭력 장면조차 미학적으로 승화시키는 독특한 스타일을 보여왔습니다. <어쩔 수가 없다>에서도 그의 시그니처가 분명히 드러날 겁니다.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행위를 다루면서도 블랙 코미디적인 요소를 섞어, 관객을 웃게 만들다가도 순간 소름이 돋게 만드는 연출 말이죠.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는데, 원작 소설 <액스(The Ax)>를 읽어보니 박찬욱 감독의 해석이 얼마나 중요할지 알 수 있었습니다. 원작은 상당히 건조하게 진행되는 반면, 박 감독은 여기에 한국 사회 특유의 정서와 유머를 녹여낼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 직장 문화의 특성상 구조조정이 주는 충격은 서구 사회와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니까요(출처: 한국고용정보원).

제 경험상 이런 사회 비판적인 영화는 감독의 시선이 어디에 머무느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집니다. 박찬욱 감독이라면 만수를 단순히 악인으로 그리지 않고, 그를 그렇게 몰아넣은 시스템의 모순까지 날카롭게 포착할 겁니다.

신자유주의 시스템이 인간을 파괴하는 방식

이 영화의 진짜 공포는 만수의 살인 행위 자체가 아닙니다. 그를 그렇게 몰아넣은 사회 구조에 있죠.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에서는 개인의 생존이 철저히 경쟁 논리에 의해 결정됩니다. 여기서 '신자유주의'란 시장의 자유와 경쟁을 최우선으로 하는 경제 이념을 말하는데, 개인의 책임과 자기 계발을 강조하며 실패를 개인의 무능으로 돌리는 특징이 있습니다.

만수가 저지르는 악행들은 역설적으로 그가 지키고자 했던 가족의 가치를 파괴합니다. '어쩔 수 없다'는 핑계가 개인의 도덕성을 어디까지 마비시킬 수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거죠.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섬뜩하게 느낀 부분은 바로 이 지점입니다. 만수의 논리는 틀렸지만, 그 논리가 탄생한 배경은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현실이니까요.

경쟁 체제의 핵심 문제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누군가의 불행이 나의 기회가 되는 구조적 모순
  • 성실함과 능력만으로는 생존을 보장받지 못하는 불안정성
  • 실패를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리는 사회적 분위기

사진출처 : 네이버 영화 [어쩔 수가 없다] 스틸컷

 

저는 이 영화가 단순한 스릴러를 넘어서, 관객에게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나라면 저 상황에서 끝까지 선을 지킬 수 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당연히 지킬 수 있다"고 답하겠지만, 정말 그럴까요? 박찬욱 감독은 이 질문 앞에서 우리가 느끼는 불편함 자체를 영화의 핵심으로 삼은 것 같습니다.

결국 [어쩔 수가 없다]는 만수라는 개인의 비극을 통해, 우리 사회의 구조적 폭력을 비추는 거울입니다. 영화를 보고 나면 아마 쉽게 잊히지 않을 겁니다. 제가 커리어 전환기에 느꼈던 그 불안감처럼, 이 영화가 던지는 질문도 오래도록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을 테니까요.

영화 속 만수의 극단적인 선택은 비극이지만, 그가 느꼈던 '내 자리가 사라질지 모른다는 불안'만큼은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조금씩 자리 잡고 있는 것 같습니다. 번아웃으로 잠시 멈춰 서 있는 지금, 영화는 제게 묻더군요. 무엇을 위해 그렇게 앞만 보고 달려왔느냐고 말이죠.

여러분은 요즘 어떤 마음으로 하루를 채우고 계신가요? 혹시 너무 지쳐 있다면, 잠시 숨을 고르고 나를 위한 시간을 가져보시길 바랍니다.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다정하게 자신을 안아줄 수 있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본 리뷰는 도널드 웨스트레이크(Donald E. Westlake)의 1997년 작 소설 <액스(The Ax)>를 원작으로 하여, 박찬욱 감독이 연출한 영화 [어쩔 수가 없다](2025)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원작: 소설 <액스(The Ax)> (도널드 웨스트레이크 著)
영화: [어쩔 수가 없다] (제작: 모호필름, CJ ENM / 감독: 박찬욱)

참고: 본 포스팅은 영화의 주요 설정과 제작 배경을 토대로 한 개인적인 감상과 비평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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